본문 바로가기
책과같이/인문,문학

눈먼자들의 국가 : 타인의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by 책과같이 2025. 4. 16.
반응형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 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 엮은이 신형철 -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신호는 여기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니까 세월호 이전에도 있었던 징후라는 의미이다.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일이나 잘 하세요."
구체적인 상황에서 맞닥뜨려보면 이말은 꽤 충격적이어서
정말로 그래야겠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묵묵히 그 일을 해낸다.
늘 고뇌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발언을 하고
자기 직함에 어울리는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체력을 고갈시켜가며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존경받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사라져간다.
- 작가 배명훈-
우리는 태생적으로 기울어야 했던 국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
이 기울기는
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한 것이었다.
배는 계속 운항을 해야 했다. 평형수를 뺐음에도
배의 무게중심은 생각보다 낮고 안정적이었다.
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영문도 모르고 배의 아래칸에
선적된 '국민'이란 이름의 화물이 있어서였다.
항해가 계속되고 사정은 달라졌다. 무분별한 개축과 증축이 이어지며
무게중심은 올라갔다.
정권에 눈먼 선원들은 여전히 기울기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탐욕에 눈먼 국민들은 층수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 작가 박민규 -
분향소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부모님을 따라온 몇몇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느 청년은 모래바람 한가운데서
입을 가린채 중간고사 교재를 읽고 있었다.
은색 스팽글이 잔뜩 달린 분홍색 손가방을 든 여자아이의 취향은
참으로 초등학생다워 어여뻤고
엄마 품에 안긴채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아기의 무지는
그자체로 아기다워 고마웠다.
거기 나온 이들은 다들 어렵게 시간을 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인들에게 나름 인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야 나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로고 싶었던 것 못지않게
나와 같은 감정, 같은 슬픔을 느끼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있고 싶어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곧 거기 모인 이들의 분노와 원망,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과 슬픔도 결국 모두 산 자의 것임이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건,
죽은자들은 그중 어느것도 가져갈수 없다는 거였다.
산자들이 느끼는 그 비루한 것들의 목록 안에서조차
그들이 누릴 몫은 하나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작가 김애란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