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은 바깥세상을 흡수하지 못하고 빛을 밝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몇 해 전 실명했다는 그 눈은
사회자가 그녀의 출퇴근 모습을 소개했다. '출근 첫날만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고 그 후로는 줄곧 혼자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무를 시작한지 오늘로 한 달 편도로 거의 한시간 동안 만원 전철을 타고· ·····' 그리고 물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기 힘드시죠?'
그녀는 대답했다. '네 힘들긴 하지만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걷기 때문에 그럭저럭 ······.'
'부딪치면서 ······ 말인가요?' 라고 말하는 사회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부딪치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안심이 되는 걸요.'
눈이 보이는 나는 부딪치지 않고 걷는다. 사람이나 물체를 피해야만 하는 장애물로 여기며.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부딪치며 걷는다. 부딪치는 사람이나 사물을 세상이 내미는 거친 호의로 여기며.
길 위의 쓰레기통이나 볼트가 튀어나온 가드레일 몸을 난폭하게 치고 지나가는 가방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조바심 내는 자동차의 경적
그것들의 오히려 그녀를 생생하게 긴장시키는 것 친근한 장애물 존재의 촉감
부딪쳐 오는 모든 것들에 자신을 맞부딪쳐 부싯돌처럼 상쾌하게 불꽃을 일으키면서 걸어가는 그녀
사람과 사물들 사이를 눅눅한 성냥개비처럼 한 번의 불꽃도 일으킴 없이 그냥 빠져나가기만 해 온 나
세상을 피하는 것밖에 몰랐던 나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세게 부딪쳐 온 그녀
피할 겨를도 없이 나가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나에게 그녀가 속삭여 주었다. 부딪치는 법, 세상을 소유하는 기술을.
동사 '부딪치다'가 그곳에 있었다. 한 여성의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그녀의 주위에는 물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짓 한 번에 곧바로 노래를 부를 것처럼 다정한 성가대처럼.
일본 현대 시인 요시노 히로시(1926~2014)는 학교를 졸업하고 석유 회사를 다니던 중 결핵에 걸려 3년 동안 요양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결핵이라는 병에 세게 부딪침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튼 것이다.
한 편의 시가 우리에게 와서 세게 부딪칠 때가 있다. 그때 삶의 방향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한다. 사람들과 부딪치는 게 싫어 영리하게 피해 다니는 우리 앞에 '오히려 부딪치는 것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라고 말하는 여성 시각장애인.
대도시 인근에 살면서 도심의 직장까지 혼자서 초만원 전철로 출퇴근한다. 그녀에게 부딪침은 타인과의 교류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세상을 소유하는 기술'인 것이다. 부딪침이 있기에 길을 찾고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부딪침을 '세상이 내미는 호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