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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입체적 인생을 작은 상자에 폭력적으로 눌러 담아 납작하게 찌그러트리는 말과 행동이 당당한 시대, 이 무례한 반지성주의를 어찌 납작하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본문 중에서 -

'오찬호' 작가님의 <납작한 말들>입니다.
◈ 나는 너보다 더 힘들어야 한다.
1. 내가 결혼하기전, 그는 결혼해 봐야 진짜 힘든 삶이 시작된다고 했다.
2. 내가 결혼을 하자, 그는 애가 있어야지 진정한 고생이라고 했다.
3. 첫째가 태어나자, 그는 애가 둘이니 장난 아니라면서 하나면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4. 둘째가 태어나자, 그는 딸은 생각보다 손 안 간다면서 자신은 아들이 둘이라 죽을 지경이라 했다.
5. 내가 월세 살때, 그는 2년마다 전세금 오르는 거에 비하면 월세는 큰 부담이 아니라고 했다.
6. 내가 전세 살때, 그는 대출받아 산집이 오르지 않아 초조하다며 전세는 돈이라도 돌려받지 않냐고 했다.
7. 경기도에서 버스 출근하던 그는, 겨울에 사당역에서 버스 기다려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모른다고 했다.
8. 서울로 이사와 지하철을 이용하던 그는, 9호선 지옥철 타본 사람만 월급쟁이의 비애를 안다고 했다.
9.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그는, 대기업에서 돈 많이 받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노동자냐고 했다.
10. 대기업으로 이직한 그는, 큰 회사 다녀보니 중소기업이 왜 욕먹는지 알겠다고 했다.
11. 프리랜서가 된 그는, 출근해서 어떻게든 버티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사람이 무슨 고민이냐고 했다.
12. 사장님이 된 그는, 직원들 월급날이 너무 무섭다면서 자기 사업 안 해본 자가 어찌 이를 알겠냐고 했다.
13. 그는 서른살일때, 나이 서른 먹고 사람이 쉽게 변하냐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고 했다.
14. 그는 서른아홉살이 되었을 때, 곧 마흔인데 줏대 없이 일희일비하는 것 아니라면서 소신대로 살겠다고 했다.
15. 그는 40대 중반이 넘어가자, 나이 50 다 된 사람에게 조언 말라면서 화를 냈다.
16. 그는 30년 넘게 이렇게 말한다. " 앞으로는 간섭받지 않고 살겠다!"
17. "나보다 더 힘드냐", 그는 항상 이런 말로 타니의 하소연을 단칼에 끊는다.
18. "사람사는 거 다 비슷해, 혼자만 힘드냐", 그는 항상 이런 말로 타인이 어렵게 꺼낸 말을 납작하게 만든다.
19. 그는 늘 개개인의 삶을 수직으로 비교해 상대의 고충을 징징거림으로 규정하고 무안을 준다.
20. "나도 힘든데, 넌 더 힘들었구나", 그가 절대로 하지 않는 말이다.
21. 책에서는 공감 능력 없는 사람은 절대 잘 살지 못한다는데, 항상 자신이 중심인 그는 아주 잘 산다.
22. 아니, 사람하고의 관계가 '잘'이 아님을 그만 모른다.
23. 그는 늘 자신이 가장 힘들어야 한다.
24. 그래서 늘 생각한다. '지가 힘들어봤자지.'
그의 잘못이겠는가, 그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늘 자기 계발서를 읽고 동기 부여 영상을 항상 틀어놓는다. 스스로를 긍정의 아이콘으로 자부한다. 문제는 과하다는 거다. 과하게 열심히 산다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고 있다고 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자신의 에너지가 외부로부터 인정받길 희망한다. 자신이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늘 타인을 '자신보다는' 덜 힘든 존재로 규정하는 태도는 그렇게 버릇이 된다.
당신은 어떤 그인가. 같은 한국에 살면서, 어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그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초등학생 주제에 무슨 투정이냐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빠가 깨워줘, 밥 해줘, 준비물도 챙겨주는데 뭐가 힘드냐는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다. 그런 동생에게, "너 때가 좋은 거다"라면서 한마디 슬쩍 내뱉는 첫째에게는 ' 어쭈, 고등학생 되더니 인생 다 산 것처럼 말하네'라는 속마음을 삐죽삐죽 드러낸다. 앞으로 고생할 일이 차고도 넘쳤으니 까불지 말라는 투의 말과 함께. 나라고 한국인에게 박힌 '나보다 더 힘드냐' 유전자가 없겠는가.
- p133~136
타인의 고통에 냉소로 응답하는 망가진 소통, 젠더, 인권, 공동체에 대한 논쟁을 한마디로 끝내려는 게으름. 우리의 소통이 여기까지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성공한 이의 고군분투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에 귀를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젠더에서 사회에 이르는 5가지 주제를 통해 한국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능력주의, 생존주의, 그리고 우월함과 열등함의 수직구조를 해부한다. 생존 이외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타인의 삶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리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빈부격차에 대한 우려는 "북한에 가라"라는 빈정거림으로,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회성 없다"라는 조롱으로 마무리되고, 그러한 폭력에 대한 성찰조차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납작한 말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게으른 언어가 아닌 느린 호흡으로 고민하길 권하는 책이다. 저자 오찬호는 독서를 할수록 "확실하다"라는 판단을 경계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책들 속에선 성공과 실패로 간단히 규정될 수 없는 개인들의 수많은 소우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책 역시 우리에게 타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표지 -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성차별, 인권, 공동체)에 대해 잘 이야기하시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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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 오찬호 - 교보문고
납작한 말들 | 베스트셀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용감하게 응시해왔던 사회학자 오찬호가 ‘모욕’과 ‘사이다’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망가진 소통을 파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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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 예스24
베스트셀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용감하게 응시해왔던 사회학자 오찬호가 ‘모욕’과 ‘사이다’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망가진 소통을 파헤친다. 신작 『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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