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같이/사회,정치

학벌-입시의 정치에 반하여 : 우리나라의 교육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by 책과같이 2025. 9. 9.
반응형
이 책은 정부에 대한, 그 이전에 그들에 대한, 그 이전에 우리에 대한 일종의 공개적 '항의서한'이다. 그 전체적인 목적은 그러한 대항 권력의 형성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는, 다수(국민들, 시민들 또는 민중)의 입장을 대변할 있는 하나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박준상 교수님의 <학벌-입시의 정치에 반하여>입니다.

미래의 "막연한 행복"이라는 것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 부모들과 학교들이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하는 '교육 폭력' 때문에 상당수가 자살 충동을 경험하고, 소수는 실제로 자살에 이르는 이곳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곧바로 환기시킨다. 
한국교육은 수구적 봉건성과 극단적 자본주의의 기이한 결합을 근간으로 삼아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소수의 혜택 받은 자들을 자본의 힘을 기준으로 선별하는 방향에 교육, 또는 '교육이라는 폭력'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국 교육은 서로가 서로와 연대해서 함께 화합하는 상생 면을 거의 허용하지 않으며, 극단적인 경쟁과 이기심의 각충장이자 학습장이 되어온 지 오래이다. -p10~12
학벌-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를 염두에 두면서 어떤 정책 제안서나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최대한의 대항 권력을 구축해 내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학벌-입시 문제와 관련된 지향점 세 개를, 즉 경쟁 입시철폐, 대학평준화, 대학무상화를 제시한다. -p25
이곳의 학벌-입시라는 기이한-광적인-현실 상황은 혀재의 학벌-입시체제라는 틀 내에서 나아가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의 틀 내에서 '합리적'이고 제도적인 어떠한 방법으로도 타개되지 않는다. 광기에 맞서는 또 다른 '비합리성'이 요구된다.  여기서 '합리성'이라는 것은 논리적 합리성도 초월적·절대적 합리성도 아니다. 사회적이자 정치적인, 즉 상대적인 합리성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문제 되는 '비합리성' 역시 사회적·정치적 틀 내에서 '비합리적인' 것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p33
 학벌은 정당한 근거는 없지만 매우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말하자면 학벌은 우리 대다수 각자의 현실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대다수의 학생들은 학벌 피해자들이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일반화된' 이데올로기이다. 즉 소수에게만 이익(경제적 이익이자 사회적 '지위'라는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대다수가 공유하게 된 이데올로기라는 것, 한마디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강화시키는 '병적인' 이데올로기, 그러나 너무 오랜 기간 성공 가도를 달려온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p55
사실 우리는 각자 아이를 명문대에, '스카이'에 보내고 싶어 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안다. 아이가 편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더 나아가 가능하면 아이가 남들에 비해 더 부유하게, 더 높은 위치에서 사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에. 이러한 부모의 욕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속된' 것으로 치부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것을 어떠한 도덕적 잣대로도 재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p59
대입이라는 게임은 일종의 도박이다. 소수의 승자들을 위해 다수가 판돈을 키워준후 패자들이 되어주는 도박, 승자 독식의 도박, 또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내 '자본'을 탐내고 그 증식을 막는 경쟁자들에 불과하며, 학생들은 모두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라 입시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고 거기서 승리해야만 한다. -p81
우리가 어느 집회에 나가서 소리 높여 탄핵을 외치고 그래서 정권이 바뀐들, 모두 지나가면 그만인 한때의 에피소드들에 불과하고, 우리의 일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각자의 일상은 여전히 쪼들리고 각박한데, 아이들 사교육비는 자신의 노후를 위협할 정도로 지속되는 부담이고, 아이들은 각자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험·입시에 갇혀서 국가·현실 사회의 공포스러운 권력의 감시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어야 하며, 학급의 친구들은 경쟁자들·적들에 지나지 않기에, 일찍부터 이 초-자본주의 사회의 '각자도생'의 원칙을 습득하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각자 자신과 아이들의 일상의 삶은 여전히 노예화·식민화된 상태에서 쪼그라든다. 이곳의 학벌-입시에 대한 경험은 독립국가에서 겪는 식민지 경험이다.  우리는 그렇게 삶·일상에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존중을 무시당한 채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가장 정확한 증거는 이곳의 학벌-입시 체제는 이제 우리에게 자연환경과 같은 것이기에 우리가 그 너머를 가령 학벌과 입시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현재의 학벌-입시 체제의 개혁 없이 우리는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학벌-입시 체제의 극복만이 독립의 완성이다. -p116
김종영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제안이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들 가운데 하나는, 학벌-입시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입시 과열 경쟁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너무나 오래 유지되어 온 대학 서열 체제인데, 우리는 그 근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결과에 불과한 입시제도만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서 그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에만 머물러왔다는 것이다. 

대학들 사이의 가치 차, 축적된 인프라(한 학생당 투자비, 국가 지원금 금액, 학생 한 명당 교수 수, 시설 투자의 규모등) 차로 인한 위계와 서열은 문제 삼지 않은 채 우리는 대학별 고사에서 예비고사·본고사 제도로, 학력고사로, 수능으로, 저기서 여기로 입시제도만 손질하는 데에만, 또한 -'조국사태'이후에 우리가 잘 확인할 수 있었듯이- 정시·수시 모집 인원 비율 조정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 써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드러난 결과에 지나지 않은 입시제도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들여 바로 원인인자 근본적 문제인 대학 서열 체제로 돌려야만 하며, 그 체제의 병폐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서울대 수준의 국립대학들(지방거점국립대들)을 지방 아홉 곳에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서울대에 준하는 명문대들이 전국에 자리 잡게 되고 기존의 대학 서열 체제의 강고함이 해체되며, 입시 과열 경쟁을 가져왔던 명문대 '병목현상'(명문대들의 좁은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학생들이 과도하게 몰리는 현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p143~144 
그러한(베끼기) 공부만 잘할 뿐인 학생들이 사회의 지도층(가령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왔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높은 점수를 위해서라면 동료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도 내팽개쳐왔는데, 차후에는 부와 권력에 정신이 팔려서 또다시 자기 자신들도 내팽개치면서 타인들이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 지켜내고 있을지도 모를 정의에 완전히 무감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를 12·3 계엄 선포 이후에 윤석열을 비롯한 상당수의 엘리트들이 분명히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p162
그 가짜 '수능'을 문자가 말하는 바 그대로의 '수능'으로 즉 '대학수학능력자격시험'으로 대학에서 수학능력이 있다고 판정되는 모든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가부 판단 시험으로(몇 퍼센트의 응시생들을 합격시킬지, 80%의 응시생들 또는 70%를 받아줄지 정해야 하며 이후에 졸업을 매우 어렵게 해야 한다)바꾸어야 한다. 내신도 없애서 자격고사만으로 합격 가부를 가리거나, 아니면 내신도 절대평가로 바꾸고 그 점수를 자격고사 점수와 합산해서 합격 가부를 판정해야 한다. -p168
자격고사로 전환되어 대학평준화가 실행된다면, 아니 실행된다는 약간의 움직임이 있거나 결정이 내려지기만 해도 우리는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 이다. 상위의 여러 사립대학의 재단 인사들·경영진·관계자들과 졸업생들·재학생들, '스카이' 학벌을 형성하고 잇는 각계각층의 엘리트들, 수많은 사교육 종사자들, 학벌-입시 경쟁에 큰 '판돈'을 걸어놓고 있는 여러 지역의 학부모들, 수많은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가히 '준혁명상황' 아니 '혁명상황'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현재의 학벌-입시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너무나 정확히 증명한다. -p177
먼저 어떠한 방식이로든 현재의 대학 서열 체제를 흔든다는 것은, '스카이'와 '인서울'의 상위권 대학들 각각의 '브랜드'가치(자본주의적 가치)를 흔든다는 것이다. 도한 어떻게든 대학 입시제도를 바꿔서 경쟁을 완화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만 총액이 26조(2022년), 27조(2023년), 29.2조(2024년)에 비공식적으로는 약 40조(2024년)에 이르는 사교육 시장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사교육시장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이 위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p199
입시-사교육-학벌-부동산-자본-계급 각각 사이의 극심한 상호 악영향·악순환을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억압하는 이 연쇄사슬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도, 도덕·양심의 문제도 아니고 구조적인 정치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 -p201
학벌-입시의 가치라는 것은 한세기에 걸쳐 우리 모두를 묶어두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깊이 박힌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구축해 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 입시지옥이, 이 입시의 진흙탕이 '현실적'(합리적)으로 보이게 되고 거기로부터 빠져나오려는 단호한 모든 시도를 우리는 상궤를 벗어난 '비현실적'(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 아닌가?

이 진흙탕이 과연 '현실적'인 것인지 물어야만 한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외부의 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동굴의 어둠이 너무나 당연하게 익숙한 것처럼,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학벌-입시의 진흙탕이 바로 필연적인, 나아가 '자연적인', 따라서 '현실적인' 환경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이 기이한 환경에 너무 오랜 시간 감금되어 있다 보니 우리 자신 자체가 '도착적인, 전도된' 인간들이 된 것은 아닌가? 우리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왜곡되어 있다 보니 '지옥'(헬조선)이 현실처럼 보이고 그 밖으로 나가겠다는 시도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p224

경쟁이 필요하다면,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20대 초반에 부모의 영향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시점에서 해야 한다. 적어도 각자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선택한 이후에 해야 한다. 그들이 경쟁을 감당할 수 있고, 경쟁의 이유·목적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며, 경쟁의 결과에 스스로 승복할 수 있을 때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 그들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p258
교육학자 한승희는 <대입 과잉 경쟁, 대학이 해결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입에서 벌어지는 이 과도한 경쟁의 상당 부분을 대학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즉 이 소모적이고 무의미하지만 극단화된 경쟁의 상당 부분을 대학 입학 이후의 대학에서의 경쟁이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p264
솔직히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시 경쟁교육 폐지! 대학 무상교육, 대학평준화 실현!"을 주장하는 우리 대무평은 사실상 혁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가장 큰 혁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p302 

 


저자가 주장하는 입시경쟁 철폐, 대학 무상교육, 대학 평준화에 많이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지금의 문제가 우리에게 '자연환경'이 되어 있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입시, 부동산, 사교육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검찰개혁처럼 다수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이 학벌-입시라는 고질적인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중·고에서의 소모적인 경쟁을 대학이후로 미루는 것에 대한 주장도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공부는 대학교 이후 아닐까요? 암기식, 베끼기식 공부가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말이죠. 대학생들이 초등학생보다 공부 시간이 적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교육에 '혁명'의 바람은 언제쯤 불까요? 입시경쟁철폐, 대학무상교육, 대학평준화는 가능할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