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입니다.
1. 뉴라이트 정의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기존 올드라이트에 대비되는 신우파를 나타내며 영어 New(신) + Right(우파)의 합성어이다.
- 출처 나무위키 -
2. 건국절 논란 ( p 27~35)
뉴라이트 진영에서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역사에서 1945년 8월 15일보다 1948년 8월 15일이 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본 식민 통치를 근대화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뉴라이트에게는 일본의 패전으로 이뤄진 민족의 광복이 반가운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민족분단을 굳힌 대한민국 건국을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찬양할 수 있다니 · · · · · ·. 도대체 민족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뉴라이트 논객들은 학계주류의 대한민국관을 '좌파'라고 몰아붙이며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을 주장한다. 당장 '건국절' 주장도 이승만 정권의 평가와 관련된 것이다.
이승만에 대한 내 생각을 단도직입으로 말하겠다. 그는 해방 후 한국 땅에 세워질 국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못 한 짓이 없는 사람이다. 분단과 전쟁이 그가 저지른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해방 후 한민족에게 최악의 위험으로 닥쳐온 그 일들을 그는 막기는커녕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리고 내정에 있어서는 부패와 독재로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민주주의를 억눌렀다.
그들은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문명'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 크나큰 공로 앞에서는 민족 분단도 부패와 독재도 별 흠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뉴라이트가 말하는 '문명'이란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일본 식민 통치를 옹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문명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이유에서이다.
뉴라이트는 민족을 부정하며 국가를 내세우지만 사실 그들은 민족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소속감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다. 자본계급, 투기 세력에만 소속감을 가진 자들이다. '건국절' 주장을 비롯한 그들의 대한민국 찬양은 민족과 국가 사이의 이간질일 뿐이다. 사람들의 민족 사랑과 나라 사랑을 헷갈리게 해 놓고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온 나라를 투기판으로 만들 기회를 얻으려는 교란작전일 뿐이다.
3. 식민지 근대화론 (p39, 43)
여러가지 주제를 놓고 뉴라이트 측이 많이 활용하는 수법 하나를 미리 지적하고 싶다. 통념을 벗어나는 새로운 관점을 통계 수치로 포장하는 수법이다. 숫자를 들이대면 뭔가 '과학적'인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엄정한 태도가 아쉽게 느껴진다.
1910~1930년대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3.6%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30년간 그만한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 경제가 그 기간에 꽤 활기찬 발전을 이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다.
연 3.6% 성장률을 밝혀낸 것은 훌륭한 연구 업적이지만 이것이 마치 높은 성장률이었던 것처럼 들이대는 데는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성장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거의 아무런 산업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던 1910년도다. 오늘날처럼 산업화가 이뤄질 만큼 이뤄진 상황에서 연 5% 이하로 성장률 목표를 낮추는 것을 놓고 온 국민이 서운해하는 판인데. 아무것도 없던 출발점에서 연 3.6%가 높은 성장률이라니?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산업화가 수십 년간 연 4% 미만의 성장률에 머물렀다는 것은 일제 통치가 성장을 도와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억누르고 가로막은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 시기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수탈론이라 해서 근대화의 사실을 일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수탈 대상으로 만드는 방향의, 건전하지 못한 근대화였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기본적으로 선의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에서 실제로 진행된 근대화가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이었다는 인상을 주려한다.
4. 신자유주의 (p 69,70)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를 계급사회로 재편하자는 것이다. 인구의 대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힘 있는 자들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나머지는 힘으로 누르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노선이 민족주의, 민주주의 등 기존 가치 체계를 뒤집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자유주의 인간관이 편협하고, 따라서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뉴라이트가 기존 가치 체계를 뒤집는데 힘을 쏟는 것도 신자유주의의 노선 실행을 위한 노력이다. 민족주의가 드러난 타도대상이고, 민주주의가 숨겨진 과녁이다. 역사에서 자본주의화 이외의 모든 의미를 지워버리려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뉴라이트가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극우파 이념이다.
5. 자본주의도 잘 모르는 뉴라이트(p93,107)
뉴라이트는 한국 근현대사를 자본주의 발전의 단선적 역사로 본다. 그 기준하나로 일제 통치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모두 정당화하려 든다. 이 관점이 외교에서는 미국에 맹종하며 북한을 외면하고 중국을 도발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발전 역시 역사의 한 측면이니, 그것을 중시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 외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것은 학문으로서도 가치 없는 태도며, 현실정치르 파탄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은 자본주의 발전을 방해한 테러리즘으로 보일 것이고,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은 좌파 책동에 놀아난 무책임한 사보타주로 보일 것이다.
6. 뉴라이트의 승리주의 (p186~188)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이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성공했다는 것은 목표가 올바르고 노력이 충분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 잘못된 세금 체계'인 것이다.
대기업 소유자들은 그들의 눈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더욱 큰 성공을 돕는 것이 정치다. 범죄를 사면해 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기회를 만들어주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해 줘야 그들이 신나서 사업을 잘한다. 그렇게 해서 파이를 키워놓아야 열등한 인간들도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다.
뉴라이트에 대한 나의 비판은 뉴라이트 정책이 아니라 '역사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몰상식한 역사관이 몰상식한 정책을 밀어주는 추세에 기가 턱턱 막힌다. 민족도 국가도 안중에 없이(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이용 대상인 하나의 주식회사일 뿐, 정체성과는 관계없는 존재다) 자기 정체성을 '이기적 존재'로만 규정하고 달려드는 자들이 사회통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19세기말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가장 반동적인 제국주의 노선이 득세하던 사정을 생각하게 된다. 경쟁의 주체인 국가들이 목전의 득실에만 매달려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승리'를 성공으로 보던 사회 진화론의 시대였다. 그 교훈을 깡그리 무시하는 집단이 21세기의 국가 하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부끄럽다.
7. 자본주의 신앙의 편협성과 독단성(p207~208)
뉴라이트 역사관은 자본주의 발생 이전을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를 문명의 유일한 형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눈으로는 '자본주의 이후'를 내다본다는 것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도 극히 경직된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좁고 비뚤어진 시각인가? 인간을 보는 시각이 좁고 비뚤어졌기 때문이다. 역사관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인간관이다. 인간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 탐구하는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가 의미를 갖고 파악되는 것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만 규정하고 인간에게 그 이상 관심 없는 사람의 시선 앞에서 역사는 아무 의미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자기 관점 안에만 갇혀 있으며,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광복보다 건국이 더 중요하다며 요란 떠는 것을 보면 민족보다 국가가 더 소중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뉴라이트에 경도된 이명박 정부가 일본과 미국을 대하는 자세로 보라. 대한민국은 뉴라이트에게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이다. 뉴라이트의 모든 가치는 재물에 걸려있다. 자본주의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관점 때문이다.
뉴라이트는 강한 자의 자유를 외치며 그 단결을 부르짖는다.
'강한 자들이여, 어째서 약하고 못난 자들에게 민족이란 이름, 윤리란 이름으로 발목을 붙잡히는가! 우리가 힘들여 번 돈을 왜 그들에게 세금이란 이름으로 빼앗겨야 하는가! 우리의 권리, 우리의 재산,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하자!'
8. 위기를 기회로 (p221~222)
민주 시민들은 수구집단의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민주, 평화, 진실, 정의, 자유의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분투, 노력의 과정 속에서 그 가치들은 자라날 수 있다. 지키는 노력 속에 이 가치들의 성장 기회가 있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수구 집단의 가치관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한마디로 모든 가치를 재물에 종속시키는 가치관이다. 예컨대 그들이 떠받드는 '자유'가 어떤 것인가? 그들은 자유를 내면화하지 않고 소유의 대상으로 객체화하며 따라서 내 것을 주장하되 남의 것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유가 실천의 과정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힘으로 빼앗고 돈으로 사는 물건이다. 이용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뉴라이트의 도발을 타고 넘어 인간적 가치들을 키워내는 원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든, 평화든, 진실이든, 정의든, 어떤 인간적 가치든 '내 것'이란 도장을 찍고 남의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때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진실과 정의는 허위와 불의에 승리함으로써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이다. 1987년 국민의 승리는 진실과 정이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독재 체제가 가로막고 있던 진실과 정이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 것일 뿐니다. 독재 체재 아래서도 진실과 정의를 마음속에서 키우도 있던 이들이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보통 사람들도 걸을 만한, 꽤 편안한 길이 지금은 열려 있다. 진실과 정의를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성품에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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