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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경림' 시인의 '눈이 온다'입니다.
눈이 온다
그리운 것이 다 내리는 눈 속에 있다.
백양나무 숲이 있고 긴 오솔길이 있다.
활활 타는 장작 난로가 있고 젖은 네 장갑이 있다.
아름다운 것이 다 쌓이는 눈 속에 있다.
창이 넓은 카페가 있고 네 목소리가 있다.
기적소리가 있고 바람 소리가 있다.
지상의 모든 상처가 쌓이는 눈 속에 있다.
풀과 나무가, 새와 짐승이 살아가며 만드는
아픈 상처가 눈 속에 있다.
우리가 주고받은 맹서와 다짐이 눈 속에 있다.
한숨과 눈물과 상처가 되어 눈 속에 있다.
그립고 아름답고 슬픈 눈이 온다.

내내 신경림 시인의 시를 찾아서 읽었지만 이렇게 절실하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은 처음이다. 참 아름답다. 가슴이 뻐근해진다. 지금 이 시인은 눈 오는 세상 풍경 앞에 있다. 그러면서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는 회상에 젖어있다. 이런저런 일들. 기쁘고도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일들. 때로는 상처가 되어 옹이가 되어 남은 일들. 한 편의 시에서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조감하고 느끼는 일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립고 아름답고 슬픈 눈이 온다.'는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남아 울렁거린다. 커다란 조에서 울려 나온 종소리가 멀리까지 가서 사람들 마음에 맴돌며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듯이. 모처럼 좋은 시를 읽는 일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 나태주 시인의 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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