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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준' 시인의 '우리들의 천국'입니다.
우리들의 천국
곁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신은 나와 헤어진 자리에서
곧 사라졌고 나는 너머를 생각했으므로 서로 다른 시간을
헤매고 낯익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 시간과 공간 사이,
우리는 서로가 없어도 잔상들을 웃자라게 했으므로
근처 어디쯤에는 그날 흘리고 온 다짐 같은 것도 있었다.

때로 우리는 자기가 좋다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하게만 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이 세상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철없지만 풋풋하고 아름답고 어리석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된다. 아니, 깨닫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라는 것을! 더러는 다툼이기도 하고 이별이기도 하고 거절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런 뒤에 다시금 깨닫는다. 모든 사랑은 두 번째 사랑이 아니라 첫 번째 사랑, 첫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생기고 아름다운 젋은 시인이 어찌 그것을 벌써 눈치채 버렸나! 시인은 고백한다. '당신은 나와 헤어진 자리에서 곧 사라졌고 나는 너머를 생각했으므로 서로 다른 시간을 헤매고 낯익은 곳에서 다시 만났다'라고. 그러하다. 짝사랑이고 첫사랑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 그래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사랑이란 것이 둘이서 마주 보며 숨 가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쯤 거리를 두고 멀리서 그 숨소리만으로 그 '잔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란 것을 알았으므로.
이 시인의 문장 안에는 놀랍게도 김소월 선생의 시 <산유화>,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의 그 '저만치'가 들어 있다. 하나의 지혜요, 깨달음이다.
- 나태주 시인의 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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