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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일상/필사

오늘의 필사 : 편집부에서 온 편지(헤르만 헤세)

by 책과같이 2025.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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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헤르만 헤세'의 시 '편집부에서 온 편지'입니다. 

편집부에서 온 편지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맡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준다.
아마 램프로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전쟁 반대론자였기 때문에 독일의 군국주의 아래서 배신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고 모든 저서가 출판금지되었다. 극심한 심적 고통으로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스물두 살에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과 산문집 <자정 이후의 시간>으로 문단에 입문했으나 히틀러 사망 후인 6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암울한 세월동안 수많은 '거절편지'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찬사를 들으려는 목적 없이' 계속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 주거나 인정받기 위해 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지막 해의 오묘한 독백, '시를 써서 혼자 소리 내어 읽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부족할 게 없다. 

- 류시화의 해설 [시로 납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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