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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매일 '시로 납치하다'를 필사 중입니다.
오늘은 '제인 케니언'의 시 '그렇게 못할 수도' 입니다.
그렇게 못할 수도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벽에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시인이며 번역가인 제인 케니언(1947~1995)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쓴 시다. 대학생 시절, 문학을 강의하던 19살 연상의 시인 도널드 홀을 만나 결혼한 제인은 뉴햄프셔의 농장에서 스무 해를 살았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가벼운 산책, 함께하는 식사, 그림감상, 정겨운 포옹, 내일을 기약하며 잠드는 일등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그것들은 그냥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얼마나 많은 사고, 갑작스러운 병과 재해에 가로막히는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얼마나 축복된 시간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큰 기회이다. 그 '특별한' 일상들이 사라질 날이 곧 올것이기 때문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발로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삶은 수천가지 작은 기적들의 연속이다. 그것들을 그냥 지냐 쳐 선 안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행간마다 '늦기 전에 깨달으라' 라는 말이 숨어 있다.
- 류시화의 해설, <시로 납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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