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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어령'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입니다.
어느덧 나태주 님이 엮은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의 마지막 필사네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이어령이란 이름에 대해선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 우선은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문화행정가, 잡지 편집인. 그리고 시인. 또 무슨 역할을 더 적어야 하나. 종합선물세트 같은 분이다. 이분이 시집을 냈다. 놀라운 일이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위의 시는 시집의 표제가 된 작품. '무신론자'라 했지만 이미 무신론자가 아니다. 통상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하늘에 계신 분'을 부르는 말이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이미 기독교 신자인 사람이 하느님을 부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이미 기독교 신자이며 무신론자가 아니다. 과거 무신론자였다는 하나의 고백이다.
절절한 기도문이다. 반짝이는 기도문이다. 아이같이 호기심 많은 기도문이다. 분명 하나님도 그런 기도를 들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셨을 것이다. '그래, 그래, 내가 안다. 오래전부터 내가 너를 알고 있었고 네가 나를 인정하고 선택하기 전부터 나는 너를 인정학고 선택했단다. 너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고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란다.' 역시 고마우신 하나님이다.
- 나태주 시인의 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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